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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가 된 아내, 그리고 무너진 일상

by 배완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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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가 된 아내, 그리고 무너진 일상 – 남편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식주의자 책 표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이 변화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남편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한 인간이 자신의 일상과 기대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고통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소설은 영혜가 갑작스럽게 채식을 선언하고, 그로 인해 가족과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의 관점에서 보면, 영혜의 채식 선언은 충격 그 자체다. 그는 영혜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평범하고 무난한 아내로서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아내는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고, 그 이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악몽을 이야기한다. 남편은 이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불편한 변화"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왜 남편이 이런 상황을 감당해야만 할까? 아내의 개인적인 결정이나 정신적 혼란이 그 자신의 선택일지라도, 그것이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가정의 균형을 깨뜨릴 때, 남편은 그 피해를 묵묵히 감수해야 하는 걸까?

남편은 아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거부하며 자신이 당하는 피해에만 집중한다.

 

그는 아내가 채식을 하면서 집안에서 고기가 사라지고, 일상의 편안함이 무너지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심지어 아내가 더 이상 자신과의 잠자리조차 거부하면서 남편은 더 큰 불만을 느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남편은 아내의 내면적 갈등이나 고통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이 잃어가는 일상과 편안함만을 바라본다.

 

여기서 남편의 입장은 어느 정도 공감할 만하다. 누구나 힘든 상황을 겪고 있으며, 그 힘든 상황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은 영혜의 변화를 지켜보며 자신이 알던 아내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보지만, 그가 느끼는 것은 주로 자신의 불편함이다.

 

그의 눈에 영혜의 채식주의는 단순한 일탈이자, 그로 인해 자신이 겪어야 하는 불필요한 고통이다. 그는 아내를 설득하려 하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아내의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편이 이 모든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맞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리기 어렵다. 부부 관계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유기체와 같다. 영혜의 결정은 그녀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해 남편의 삶도 함께 변하게 된다.

 

남편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부부라는 관계는 서로의 변화를 수용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편이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줄 책임이 있는 것처럼, 아내의 변화로 인해 남편이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남편은 영혜의 변화가 자신에게도 큰 고통을 주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겪는 불편함과 혼란을 감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한강이 그리는 부부 관계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한쪽이 겪는 내면의 변화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적인 거리감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편은 아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감당하기 힘든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시 피해자다.

 

이 소설을 통해 느낀 점은, 어떤 고통이나 변화도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일상과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불만을 느끼지만, 결국 그 변화의 파장은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남편이 겪는 혼란과 상실감은 당연한 반응일 수 있지만, 그 또한 아내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오지 않았을까.

결국, 이 소설은 한쪽의 변화가 관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피해를 감당하는 것이 누구의 몫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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