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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by 배완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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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탄신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은 매년 4월 28일로, 대한민국에서는 이 날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에 대한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한 기념일로 채택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으로서,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 왜병과 싸워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립니다. 이 기념일은 1973년에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이전에는 명칭이 충무공 탄신일이었으나 2013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올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 480주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에 태어났으므로, 2024년에는 그의 탄생 480주년을 기리는 날이 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의 뛰어난 무신으로, 그의 업적은 역사상 가장 높은 존경을 받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1545년 4월 28일에 태어나서 1598년 11월 1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정이고, 어머니는 초계 변씨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한성 건천동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하들을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여 나라를 구한 성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그의 용기, 뛰어난 지도력,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정신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전쟁의 예측불가능성과 용기를 상징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남을 것입니다.

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명량해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수많은 왜군의 수군을 물리친 전투로 임진왜란의 기세를 바꾸었습니다. 또한, 그는 거북선이라 불리는 새로운 함선 유형을 개발했습니다. 이 함선은 철판으로 덮여 있어 화염병 등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전술적으로도 적중률과 기동성을 향상시켰습니다.

그의 가문은 그의 업적과 더불어 그의 가치관과 정신을 계승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가문과 관련된 몇 가지 추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가문의 배경: 이순신 장군은 문반 가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이정이고, 어머니는 초계 변씨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한성 건천동에서 보냈습니다.
  • 호(雅號): 이순신 장군의 호는 '덕암(德巖)'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직계 후손의 항일 독립운동: 이순신의 직계 후손들은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서 앞다퉈 항일투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 항일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 무려 12명에 이르며, 이 중 독립장 6명, 애국장 2명, 애족장 2명 등 10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 이순신 장군의 명언: 이순신 장군은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사진

 

충무공의 충의를 기리는 행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의를 기리는 행사는 조선 정조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념행사는 일제강점기는 물론, 8.15 광복 후에도 민간 차원에서 간간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공식적인 기념일로 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967년에 공보부가 4월 28일을 '이충무공 탄신기념일’로 고시하였고 이어 1973년에는 법정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은 매년 4월 28일에 기념되며, 다양한 행사들이 열립니다.

 

  • 현충사에서의 행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기념 다례와 헌화 행사가 진행됩니다. 다례는 초헌관의 분향과 헌작, 그리고 축관의 축문 낭독으로 구성되며, 이어서 대통령 명의의 헌화와 분향이 진행됩니다.
  • 전국의 기념 시설에서의 행사: 전국 각지의 충무공 이순신 기념 시설에서는 탄신제 등의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인 현충사, 아산의 ‘성웅 이순신 축제’, 통영의 한산도 제승당, 여수의 충민사 등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 국방부와 해군의 행사: 국방부와 해군은 부대 별로 이순신 유적지를 방문하거나 부대 개방 행사, 초빙강연, 마라톤이나 행군 등을 실시합니다.
  • 전시회: 사회적 거리 유지가 가능한 야외공간을 활용하여 '충무공 진심 마음에 담다’라는 주제로 작은 전시회를 열어 국민과 함께 다양한 문화행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가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문은 그의 업적과 더불어 그의 가치관과 정신을 계승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가문과 관련된 몇 가지 추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가문의 배경: 이순신 장군은 문반 가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이정이고, 어머니는 초계 변씨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한성 건천동에서 보냈습니다.
  • 호(雅號): 이순신 장군의 호는 '덕암(德巖)'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직계 후손의 항일 독립운동: 이순신의 직계 후손들은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서 앞다퉈 항일투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 항일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 무려 12명에 이르며, 이 중 독립장 6명, 애국장 2명, 애족장 2명 등 10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 이순신 장군의 명언: 이순신 장군은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의 뛰어난 무신으로, 그의 업적은 역사상 가장 높은 존경을 받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전설적인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 명량해전: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수많은 왜군의 수군을 물리친 전투로 임진왜란의 기세를 바꾸었습니다. 이 전투는 그의 뛰어난 전략과 용기로 조선 함대가 불리한 상황을 뒤집고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 거북선 발명: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이라 불리는 새로운 함선 유형을 개발했습니다. 이 함선은 철판으로 덮여 있어 화염병 등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전술적으로도 적중률과 기동성을 향상시켰습니다.
  •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해군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전략과 지도력으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노량해전: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의 도움으로 왜군의 철수하던 배들을 200여 척 넘게 격파하고 파손시키며 추적을 하다가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이 노량해전의 끝으로 7년간의 임진왜란이 종전을 하였습니다.
  • 해상 전투 혁신: 이순신 장군은 다양한 해전에서 기존의 전쟁 전술을 혁신했습니다. 그의 현명한 작전과 예상치 못한 전술로, 적을 교란시키고 승리했습니다.
  • 성공적인 해상 방어: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해상 방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외적인 위협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조선의 해상 침입을 방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 전설적인 마지막 순간: 이순신 장군은 유탄을 맞고 사망했는데, 마지막 숨을 거두며 '승전고를 두드려라. 그리고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말하며 아들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고 전투에서 승리할 때까지 자신으로 가장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설은 그의 용기, 뛰어난 지도력,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정신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전쟁의 예측불가능성과 용기를 상징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남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정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은 그의 삶과 업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 강력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이 그의 정신을 대표합니다. 그의 정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정신: 이순신 장군은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그의 불굴의 의지와 희생정신을 보여줍니다.
  • 리더십: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소통 리더였습니다. 그는 부하의 입장에서 소통을 하는 리더였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부하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직시하도록 엄격하게 통솔했습니다.
  • 청렴함: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직속상관에게도 소신 있는 말을 전하며 청렴함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 통찰력: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류와 물살의 특성을 이용하여 전략을 세웠습니다.
  • 용기: 이순신 장군은 솔선수범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해전을 앞두고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조선 수군들에게 자신이 먼저 나서 적진에서 싸웠습니다.
  • 지식: 이순신 장군은 꾸준히 독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독서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순신 장군 명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그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헌신적인 정신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속담과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명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며 남긴 유언입니다. 이는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전투에서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장병들에게 강조한 말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하루 앞두고 휘하 장수들에게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리더의 임무와 책임, 영향력을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출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워나가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포함된 문장입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 후 남아있는 12척의 배로 일본 수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밝힌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일기

이순신 장군의 일기는 '난중일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일기는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즉 임진왜란 동안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것으로, 그의 전략과 생각,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군사적 통찰력과 지도력, 그리고 그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일기는 그의 전투 전략, 군사 훈련, 그리고 그의 사사로운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의 다양한 면을 보여줍니다.

난중일기는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에 위치한 현충사에서 소장 및 관리되고 있으며, 1962년에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그의 뛰어난 지도력과 전략, 그리고 그의 인간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그의 업적과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조선시대의 명장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1592-1598) 기간 동안 기록한 일기입니다. 이 일기는 당시의 전란 상황, 군사적 전략, 개인적 감정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한국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적 가치를 가진 중요한 문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것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개월 전인 1592년 (선조 25년) 정월 (1월) 1일부터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선조 31년) 11월 17일 (양력 1598년 12월 14일)까지 2,539일간 기록한 일기입니다. 현재까지도 이순신이 직접 쓴 일기 초고본 8권 중 7권이 남아서 충남 현충사 에 비치되어 있으며,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6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그 날의 기상 변화, 군무 내용, 진중의 군정 등이 기재되어 있으며, 별일 없었던 날에는 그냥 날씨만 기재된 날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인 정서도 기록되어 있으며, 시취 (時趣)에 넘치는 일상생활, 동료 · 친척과의 왕래 교섭, 이순신 본인의 개인적인 집안일은 물론 당시 조선 수군 (水軍)의 지휘에 관한 비책 (秘策), 국가 및 조정에 대한 충성과 강개, 왜군에 대한 분노의 감정 토로 등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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